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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데일리 로그

2022년 7월, 28살에 부모님의 노후 계획을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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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나는 요새 원인 모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니고 있던 좋은 회사에서 5월에 시니어로 승진을 했고, 재테크 공부도 적어도 놓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1순위였던 다이어트에 대해서도 5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약 3개월) 4키로를 감량하고 있다. 

이만하면 잘 하고 있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을 정도로 기분이 축축 처지고 일을 하기가 싫었다. 

그러던 와중 시프트가 변경이 되면서, 이전 시프트에서 변경이 되는 주간에 금토일을 쉬게 되었다. 잘됬다 싶어 월요일에 휴가를 신청해서 아예 4일을 통으로 쉬는 연휴를 셀프로 만들었다. 

4일 휴가의 첫날에 싱가포르 도비갓 플라자 싱가푸라로 가서, 다이어트 때문에 참았던 파이브 가이즈 버거 세트를 먼저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충전기 꽂을 곳이 있는 (중요) 스타벅스에 들어가 앉아서 노트를 펴고 그제서야 내 기분을 분석해 보기 시작했다.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내 문제는 이거였다. 

1. 목적 의식 상실 
2. 비교의식
3. 미래에 대한 불안함 

지난 1년간 승진을 위해 열심히 달리다가 막상 이루고 나니 번아웃이 와버린 건 알았는데, 2번과 3번 같은 경우는 서로 관련이 있으면서 약간 복잡했다. 


작년 말에 저축한 돈을 털어 마지막 학자금 대출을 갚아내고 나니 말 그대로 은행 잔고 0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2022년에 사실상 사회초년생이 된 셈인데, 그걸 알고 있었는데도 못 받아들였나보다. 직장 생활 5년이면 5천만원은 모았을 텐데(실제로 갚은돈이 그정도니) 전부 없이 0에서 시작을 하려니 내심 억울했나보다. 
거기에 주변에 비슷한 나이대의 잘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예쁘고 전문직에 잘나가는 동갑내기들을 보고 있자니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무의식적으로는 나를 그 친구들에게 견주어보고 있었던 거다 ㅠㅠ 저 친구들은 지금쯤 얼마는 모았을 텐데, 앞으로 나보다 잘 벌 텐데 기타 등등등.... 

2022년에 사회초년생처럼 시작할 수도 있지,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생각했는데 28살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속으로는 '이래서 언제 결혼자금 모으지...'라는 생각(참고로 결혼할 사람도 없다) 그리고 '부모님 노후대비는 보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맴돌았고 이게 곧 잠재의식 속에 불안으로 자리잡았었나보다. 

꿀꿀한 기분을 조목조목 따져 적어보고 나서, 그러면 내가 이 걱정 내지는 불안을 덜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부모님께 당신의 노후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가족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은 돈 얘기를 그다지 안하는 집이었기에 이제까지 막연하게 우리집은 어렵고, 부모님은 힘들고 때문에 손을 벌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왔다. 이 막연함이 문제였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빠께 보이스톡을 걸어 최근 나의 심정과 궁금증을 털어놓았고, 아빠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진작에 물어볼걸 싶을 정도로... 

부모님께는 연금이 3개, 적금 통장이 2개씩 그리고 주식에 넣어놓은 돈 그리고 부동산 자산이 소규모지만 하나 있으셨다. 부유하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았으며 상당히 대비가 된 상태였다. 여기까지 들은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리집 가계부채는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나는 빚이 있다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장래에 내가 어느 정도 부담할 수 있는지를 계산해두고 싶었다. 
아빠는 작년까지는 있었지만, 작년에 완전히 청산을 해서 이제 빚은 없다고 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어쩌다 엄마아빠의 대화에서 빚이 1억 넘게 있다는 사실을 엿들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집 사고 뭐 하는데에 억대의 돈이 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학생 시절엔 어린 마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이 기억이 우리집은 어렵다고 생각한 데에 일조한 듯. 

나는 아빠께 큰딸은 더 바랄 게 없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이제 동생(대학원생)한테는 내가 용돈을 보내겠으니 부모님은 우리에게 더 이상 주지 않으셔도 되고 앞으로 버시는 돈은 전부 두분을 위해서 쓰시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렸다. 
통화를 마치니 막연한 불안감이 넘실대던 머릿속이 진정된 기분이었다. 나는 아직 젊고, 이제서야 경제 공부를 시작했고 앞으로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아빠는 내가 이 질문을 한게 기쁘셨던 거 같다. 사실 지난번 내가 한국에 갔을 때 이런 얘기를 해주려고 했었는데, 내가 돈 얘기를 부담스러워할까봐 관두셨다고 한다. 집안에서 너무 돈돈 거리는 것도 안좋지만 어릴 때부터 돈얘기 안하는 것도 좀 문제인 거 같다 ^^;; 

이 글을 혹시나 보시는 분들 중 비슷한 상황이나 고민을 겪으신다면 막연히 짐작하지 마시고 물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알고 나면 계획이 생기고 대처법이 생긴다. 

우리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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